Wednesday, June 18, 2014

기억하고 싶은, 기억해야 할 영화 '오늘'





기억하고 싶은 영화가 한편 생겼다.
영화 '오늘'

우연히 보게된 이 영화는 참된 '용서' 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주인공인 다혜도 예전에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들을 덮어두고 참는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런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그녀의 생일날 어느 소년에게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게 된다. 그렇지만 그 소년이 아직 미성년자라는 점과 부모의 사과 그리고 교회의 권고로 인해 탄원서를 쓰게 되고 용서를 하기로 한다. 가해자는 석방되었다. 하지만 다혜는 그 용서가 마음의 중심에서의 진실된 용서가 아니라는 것과 그런 자신의 모습에 점차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가짜 용서로 인해 제 2, 제 3의 피해자가 나오게 된 사실을 알게 되고 깊은 회의감과 절망에 빠져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여러 상처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이다.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진짜 용서란 무엇일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다. 일흔번의 일곱번까지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내가 그 말씀을 따르고 용서를 선포하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면 그것이 진짜 용서가 된 것일까? 아니 이 세상에 진짜 용서가 사람에게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신앙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앙 자체에 폭력성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 신앙을 갖은 사람들이 ( 아니 진짜 갖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말씀으로 권면함에 있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무조건 말씀에 빚대어 상처를 준다. 용서해라, 감사해라.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하나님께 맡겨라.. 이런 말들.. 틀린 말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상대방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마음은 그게 아닌데, 그런 말로 인해 그렇게 할수 없는 자신을 죄인 만드는 말들.. 우리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잘못 없는 순결하신 분이신데 피해자가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내 죄를 대신해 달리셨다. 내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나는 용서받은 존재가 되었다. 나의 악함과 본질상의 죄, 결코 해결할수도 없는 죄로 용서받을수도 없어서 무기징역이었던 내가 깨끗하게 속량받아 사망이라는 감옥에서 나올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영화 제목인 '오늘' 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제 세상을 떠난 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오늘'.
나에게 '오늘'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날 용서해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받은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수 있는 '하루' 라고 생각한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3:8)
그러므로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진정한 용서. 어쩌면 그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다. 영화속 어느 피해자의 말처럼 용서는 미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인생의 어느 때에 내가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었을때.. 나는 어느 열매을 맺어야 하는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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